
한국불교 두 거인의 대화록 ‘설전(雪戰):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책읽는섬 刊)가 출간됐다. 1967년 해인사 '백일법문' 중 때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이 주고받은 질문과 대답, 그리고 그후 15년 만인 1982년의 대담도 실렸다. 50년 전, 35년 전의 대담을 통해 두 거인이 깨달음과 수행, 세상에 대해 나눈 대화와 인연의 자취를 문답으로 정리한 책이다. 1967년 해인사 초대 방장에 오른 성철(性徹·1912~1993) 스님의 '백일법문'이 열렸고 전국의 선승(禪僧)들이 해인사로 몰렸고 법정(法頂·1932~2010) 스님도 있었다. '백일법문' 녹음 테이프를 풀던 중 법정(法頂·1932~2010) 스님이 등장하는 대목을 발견한 덕분에 이 책이 50년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필요하면 그때그때 물어야지, 법문 끝나고 나서 나중에 질문하면 그때의 감정이 없어지니까 질문에 힘이 없어질 것 같습니다"라며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중도(中道) 이론을 좀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중국 선종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등등으로 이어진다. 법정 스님은 “불교란 무엇인가” “기독교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망설임 없이 던졌다. “법문만 듣고 있으니 얼얼하다. 출가하게 된 인연을 말해 달라”고 도발적으로 청하기도 했다. 성철 스님은 여유롭게 때로 즐기듯이 답한다. “죽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눈을 감으면 캄캄하고 눈을 뜨면 광명입니다. 본래 생사란 없습니다. 삶 이대로가 열반이고 해탈입니다.” 중국 선종(禪宗)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되는 육조 혜능이 글도 모르면서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깨쳤다는 부분에 대해 성철 스님이 "금강경 한문이 아니라 중국말을 듣고 깨쳤다"고 답하면 "말이나 문자나 같은 것 아니냐?"고 대든다. 자신의 수행뿐 아니라 후학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도 추상같기로 유명한 성철 스님이었지만 젊은 법정 스님의 '도발'에 대해서는 너무도 친절히 답변해줬다. 불교의 핵심 사상인 중도 사상에서부터 자신의 출가 사연까지 모든 것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법정 스님의 질문이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법문을 듣는 다른 스님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인연을 이어가며 불교 정신은 물론이고 지도자의 덕목, 인간성 회복, 미래가 꺾인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도 폭넓게 나눴다. 성철 스님은 자신이 쓴 원고 ‘본지풍광’ ‘선문정로’를 손봐달라고 부탁했고, 법정 스님은 정성을 기울였다. 1993년 성철 스님이 열반에 들었을 때 추모사를 쓴 이도 법정 스님이었다. 때론 팽팽하게 때론 따스하게 나눈 문답에는 이들이 치열하게 추구한 사랑과 자비, 지혜가 담겨 있다. ‘설전’에는 1982년 두 스님의 대담도 실렸다. 그 사이 성철 스님은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됐고,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비롯한 에세이로 필명을 날리고 있었다. 대화 내용은 15년 전에 비해 묵직하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날카롭다. 법정 스님은 짐짓 "왜 스님을 만나러 온 사람들에게 3000배를 시키는가" "간단하게 불교를 뭐라 설명하겠는가"라고 묻고 "사람이… 정말 성불할 수 있는가" "(성불하는 데 언어문자는 필요 없다고 하면) 우리 '팔만대장경'은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런 진지한 문답 가운데 성철 스님은 자신의 좌우명이 '영원한 진리를 위하여 일체를 희생한다'는 것이라며 "나는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서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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