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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가 낳은 옥동자' 번뇌일까 암시일까

2015.03.14 | 정진해 문화재전문기자



강릉시 내곡동 야산이 두려있는 구릉에 자리한 신복사 터에는 삼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이 중심축을 이루고 그 주위로 원형을 잃은 석물이 등을 들어내 보이며 옛터에 남아 있다.

 
▲     ©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신복사지


발굴을 마치고 정리된 절터에는 석물이 드문드문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며, 낮은 산이 두려있어 협소해 보이는 신복사는 통일신라시대 문성왕 12년(850)에 범일 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설화에 의하면, 학산에 살고 있는 양가의 처녀가 석천에 물을 길어 갔다가 표주박에 담긴 물에 햇볕이 드리운 것을 보고 마셨다. 그 후 14삭(朔)에 옥동자를 낳았다. 처녀의 몸이 아이를 낳은 것은 집안의 수치스러움과 망신이었다.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마을 뒷산 큰 바위(지금의 학바위) 양지바른 곳에 내다 버렸다. 사흘 뒤 그곳을 찾았을 때 두 마리의 학이 교대로 따뜻하게 감싸고 열심히 열매를 물어다 먹여주고 있었다.
 
기묘하고 신비스러운 모습을 본 아이 엄마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집안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이름을 범(梵)이라 짓고 키웠다. 성장하는 범은 어머니와 이별을 하였다. “불초자는 어머니를 위하여 반드시 큰 사람이 되어 돌아올 것이니 근심하거나 저를 찾지 말아 주십시오.”하고는 떠났다.

그 뒤 범(梵)은 승려의 최고 지위인 국사(國師)가 되어 돌아왔고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신복사(神福寺)와 굴산사(掘山寺)를 세웠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     © 복스러운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닌 석조보살 좌상
 
 
탑(보물 제87호)을 향해 연화대좌에 앉아 공양하고 있는 석조보살좌상(보물 제84호), 왼쪽 다리를 세우고 오른쪽 다리를 꿇어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가슴에 모은 손, 왼손은 위쪽에 오른손이 아래쪽에 청동 간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원통형의 관을 쓰고 있는 보살의 얼굴형은 복스럽게 보이며 입술은 미소를 띠는 미인형이다.

관 밑으로 드러나 보이는 묶음 머리카락은 어깨너머 늘어져 있으며, 양 어깨에 걸쳐진 옷자락은 몸의 윤곽에 따라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또한, 목걸이, 팔찌, 옷 주름은 마치 칼국수발처럼 묘사되었으며 전체적으로 각이 없는 둥글고 둔중한 표현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보관 위에 덮고 있는 갓 모양의 돌은 8각의 형태로 각 모서리에 귀꽃을 새겼고, 보관과 닿는 부분에는 겹연화문을 새겼으며, 8각의 모서리 안쪽에는 물체를 달았던 구멍이 나 있다. 이 갓은 이곳에 있었던 석등의 지붕돌을 누구에 의해 올려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좌의 윗면은 팔각의 형태를 띠며 바깥에는 2겹의 연꽃잎을 새겼고, 보살이 앉아 있는 부분은 원으로 표현하였다. 대좌 아래 중대석은 북 모양의 8각의 각 면에 측면에서 본 연화문(일명 안상)을 새겼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은 화려했던 통일신라의 요소가 사라지고 고려 초기의 강원도 지역에서 유행한 양식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은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 제124호),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에서도 공통으로 보이는 특징이기도 하다.

석조보살좌상이 지물을 받치기 위해 바라보고 있는 대상은 삼층석탑(보물 제87호)이다. 동쪽의 얕은 산 위로 떠오르는 햇살은 소나무 사이로 가장 먼저 석탑의 상륜부를 정조준한다.

각부의 조각 수법이 특이한 삼층석탑은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둔 형식이다. 판석이 목조건축의 난간을 연상케 하는 매우 특이한 형태로 탑을 구성하고 있다. 지대석 위의 각 면에 각각 6개씩의 복련을 둘렀고, 하대중석 4면에는 각 3구의 안상을 새겼다. 안상은 흔히 코끼리의 눈이라고 하는데, 이 문양은 연꽃이 피었을 때 측면에서 본 연꽃의 모양이다. 석탑 또는 승탑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특히 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보물 제8호), 칠곡 기성리 삼층석탑(보물 제510호), 철갑선사승탑(국보 제57호)에서 보면 연꽃임을 알 수 있다.

1층의 몸돌에는 부처의 사리나 불경을 모셔두는데, 이를 안치하는 감실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탑의 기단과 몸돌의 각 층 밑에는 괴임석을 넣었으며, 지붕돌 아래에는 3단의 받침석을 두었는데 이러한 양식은 고려 초기의 석탑 양식을 따른 것이다. 몸돌에는 각 모서리에 우주를 새겼고, 2층부터는 몸돌의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어 각층 지붕돌 위에 놓인 괴임돌과 거의 같은 두께이다. 지붕돌의 경사는 완만하고 추녀 끝이 살짝 들린 듯 대각선을 이룬다. 3층 지붕돌 위에는 노반, 복발, 앙화, 보주가 차례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앙화에는 꾸임없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높이와 비교하면 폭이 넓어서 안정감을 주며, 각 층에 끼어 있는 별도의 판석으로 인해 균형이 잡혀있다. 이러한 석탑은 통일 신라말 또는 고려 초기에서 볼 수 있는 석탑의 유형이다.

오늘의 해는 준엄한 태백산맥을 넘는 순간 황혼의 빛은 옛 절터에 가득 채웠다가 또다시 일출을 기다리며 긴 밤의 여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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