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번민의 숙제가 날아들었어요.
태자가 열두 살이 되었어요.
일곱 살 때부터 본격적인 무술, 본격적인 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태자가 열두 살 되었을 때
농경재에 참석을 했어요.
농경재라는 것은 밭갈이를 말합니다.
인도의 밭갈이는 어떻게 하는지 봐 봐요.
뒷면 12번 봐 봐요.
소가 한 마리 끕니까? 두 마리 끕니까?
소가 두 마리를 끌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시골에 농사짓는데 가보면 소가 한 마리를 끌겁니다.
저희들 어릴 때도 밭갈이를 하거나 논갈이를 할 대 소가 두 마리를 끌지는 안 해요.
그런데 인도는 두 마리가 끌잖아요.
두 마리가 밭갈이를 하고 있지요.
제가 얼마나 자상하면 이 사진을 찍어왔을까?^^
옛날에는 농경사회였으니까 왕이 봄이 되면 농경재, 밭갈이, 논갈이 행사에 참석을 했던 모양입니다.
연중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어제도 우리가 유치원 아이들하고 밀하고 보리를 수확하는데 지렁이가 아주많아요.
지네처럼 생긴 냄새나는 것이 있거든요.
그것이 뭔지 아십니까?
노린제비인가 그런 것 있잖아요.
아이들은 그것이 신기해서 떠들고 난리더라고...
거기에 지렁이가 있으니까 개구리도 많아요.
개구리가 또 지렁이를 먹거든요.
그것이 먹이사슬 아니겠습니까.
밭갈이를 하는데 굼벵이 같은 벌레가 꿈틀꿈틀 나오니까 작은 새 한 마리가 그 굼벵이를 물고
날아올랐어요.
그 작은 새를 저 멀리서 매처럼 큰 새가 보고 있더니 잽싸게 작은 새를 물고 날아 올라가버렸어요.
그것을 보고 왜 세상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지 않으면 안 되는가?
첫 번째는 먹이사슬...왜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이 있을 수밖에 없는가?
거기에서 크게 회의를 느꼈어요.
곧장 나무 밑으로 가서 고민을 하는 겁니다.
세상은 왜 이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가?
왜 힘이 강한 자가 힘이 약한 자를 먹을 수밖에 없는가?
그것을 염부수 아래의 정관이라 이렇게 말해요.
한 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염부수
염부수
염부수라고 하는 나무 아래서 靜觀정관, 고요히 관찰했다 이 말입니다.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염부수 아래의 靜觀정관
염부수 아래의 靜觀정관
염부수라는 나무 아래서 명상에 들어갔어요.
사색에 들어간 겁니다.
정반왕이 태자가 안보이니까 찾아다녔어요.
염부수라는 나무 아래서 명상에 들어있는 그 모습을 보고 부왕은 연방 출가자하고 똑같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내 아들이 염부수 아래서 명상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는 ‘내 아들이 수행자다. 수행자다.‘
하면서 걱정이 태산입니다.
정말 출가하면 어떻게 하나...
이 나라는 어떻게 하나...
종묘사직은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된 거요.
태자의 사색은 그냥 단순한 것이 아니었어요.
이것은 유추할 뿐이지요. 태자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첫째는 먹이사슬...왜 생명체들은 서로 먹고 먹히지 않으면 안 되는가?
또 유추해본다면..
두 번째는 왜 계급사회가 형성되어 있는가?
왜 이 세상은 지배자가 있고 피지배자가 있고 밭갈이 하는 사람이 있고 밭갈이 해 놓은 농사를
빼앗아 가는 사람이 있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거요.
당시의 계급사회에 대해서 스스로 문제를 던지고 회의를 했다는 겁니다.
15번 그림을 보시면...
그 사람들은 불가촉천민 수드라입니다.
이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거지 짓을 해서 살아갑니다.
아주 살기가 비참하지요.
자는 것도 노지에서 대충 텐트 쳐놓고 잡니다.
이런 사람들도 아이도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영원히 불가촉천민이지요.
이런 최하층 수드라입니다.
14번 그림을 보시면...
이 아이들은 평민아이들입니다.
농사꾼의 아이들인데 지금 먹고 있는 것이 뭐겠습니까?
사탕수수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수수깡 먹고 옥수숫대 먹고 했던 것처럼 아이들이 사탕수숫대를 먹고 있는 겁니다.
먹어보면 달작지근해요.
불가촉천민들은 수드라, 이 사람들은 바이샤, 그 위에 크샤트리아, 브라만 이런 사성제계급이
있다 했잖아요.
왜 이런 계급사회가 형성되어 있는가? 회의를 했다는 겁니다.
세 번째는 당시의 국제정세의 불안과 냉혹함에 고민을 했다는 겁니다.
당시의 가장 강성한 나라는 코살라국이고 또 강성한 나라는 마가다국, 마갈타라는 나라였습니다.
조그만 나라들은 평화롭게 공화정을 펼치면서 비록 나라는 적었지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거대한 나라들이 나타나서 공룡처럼 먹어치우는 겁니다.
거기에서 태자는 많은 갈등을 했다는 겁니다.
태자가 열두 살 때 염부수 아래서 이 세상의 일을 관찰했다.
사색했다 하는 데는 당시의 정치나 국제간의 여러 가지 현실 등을 깊이있게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그렇게 보는 겁니다.
염부수 아래의 정관 이 사건이 있은 이후에 정반왕은 자기 자식 싯다르타태자를 걱정합니다.
‘이 아이가 출가를 하면 큰일이지. 큰일이지...’ 하고 자꾸 걱정을 해요.
좋은 것은 다해줍니다.
마음을 다잡고 사바세계에 남아 있으라고 계속 독려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삼시전을 지어 줬다 그랬잖아요.
봄, 가을에 지내기 좋은 춘추전이라는 궁전도 집도 지어 주고 여름에 지내기 좋은 하전도 지어 주고
겨울에 지내기 좋은 겨울궁전 동전도 지어주고 했다는 겁니다.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썼다는 겁니다.
온갖 수레...양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등 진귀한 수레들도 태자를 위해서
만들어 주고 진귀한 물건들로 방을 치장해주고 태자가 세속에 마음을 붙이고 살도록 잡아두려고
애를 썼다는 겁니다.
드디어 15세가 되었습니다.
15세가 되었을 때 태자는 네 문을 다니게 됩니다.
첫째는 동쪽 문을 나가게 되었어요.
동쪽 문을 나갔을 때는 허리굽은 노인을 발견했고 남쪽 문을 나갔을 때는 아주 병이 든
환자를 발견했어요.
서쪽 문을 나갔을 때는 장례의 행렬을 발견했어요.
요즘의 인도사람들은 장례를 어떻게 하는가?
13번 그림을 봐 봐요.
청년들이 둘러메고 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신입니다.
시신을 꽃으로 장식을 해서 가네요.
화장장으로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태자는 장례행렬을 발견하고는 크게 고민을 했어요.
사람은 왜 태어나서 늙어가야 하는가?
왜 우리가 노인이 되어가야 하는가?
왜 우리가 병이 드는가?
왜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가?
여기에서 동쪽 문 나갔다가 고민을 하고 며칠 후에 남쪽 문 나갔다가 고민을 하고 며칠 후에
서쪽 문 나갔다가 고민을 했어요.
이 사실을 대부분의 책들은 25세 전, 후라 하는데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태자가 19세에 결혼을 합니다.
자기의 처갓집이라 해야 될까요.
그 집이 멀리 있었기 때문에 노인과 환자와 장례행렬을 볼만한 많은기회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 생각이기도 하지만 15세쯤에 四門遊觀사문유관했다 하는 것이정확해요.
15세 되면 지금으로 보면 애가 사춘기거든요.
사춘기 때에 이런 것을 보니 감당이 안된거지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지요.
동, 남, 서쪽 문으로 나갔다가 노, 병, 사를 보고 북쪽 문 쪽으로 나갔다가 몇 달이 되었든지
며칠이 되었든지 북쪽 성문 밖으로 나갔다가 무엇을 봤다 했지요?
수행자를 봤어요.
남루한 옷은 입었지만 얼굴은 평온했다 했잖아요.
수행자하고 얘기를 하다 보니까 수행자의 고민이 자기 고민이었어요.
왜 이렇게 집을 나와서 처자식도 없이 살아갑니까?
왜 사람이 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가?
이것을 고민하고 있고 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행을 할뿐입니다.
들어보니까 자기 얘기예요. 자기 얘기...
그날은 너무너무 기뻤어요.
나도 수행자가 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구나.
이런 기대감이 일어났지요.
수행자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돌아오는 그날은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수행자하고 돌아오는 길거리에 한 여인이 태자를 딱 한 번보고 마음이 변했어요.
한 여인이 길가에 서 있다가 너무나 환한 태자의 모습을 보고 금방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그래요.
태자가 좋은 수레를 타고 그 사람이 태자인지 아닌지 표시가 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금방 변했어요.
사모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했습니다.
한 번 따라 해보십시오.(본인이 여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저런 아들을 둔 아버지와 어머니는 얼마나 즐겁고 기쁠까?
저렇게 멋있게 생긴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는 여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글이 부처님 전기에 나오고 있어요.
그 날은 진짜 기뻤던 모양입니다.
길거리에 서 있던 여인도 반할 정도로 기쁨이 몸 밖으로 표출된 거지요.
왕(정반왕)에게 와서 이야기 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제가 출가하고 싶습니다.”
“안 된다. 너는 우리 집안의 하나밖에 없는 태자이면서 이 나라를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
종묘사직을 보존해야지 출가는 절대 안 된다.“
아주 단호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은 다 해줄게. 그렇지만 출가는 안 된다.” 이랬어요.
“아버지시여! 저에게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길만 가르쳐 주신다면 아버지
말씀대로 출가를 포기하겠습니다.“ 그랬어요.
사람이 태어나서 결국 병들고 죽지 않는 방법이 어디 있느냐는 거지요.
태자가 워낙 완강하게 이야기를 하니까 정반왕이 조금 후퇴를 했어요.
“왕손을 얻기 전에는 출가를 할 수 없다.”
반은 출가가 허락 된겁니다.
그러니까 왕손을 얻으면 출가를 해도 좋다는 반쯤 승낙입니다.
그런 사건이 있은 이후에 19세 드디어 열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같은 샤카족의 콜리성이라고 하는 작은 나라의 성주의 공주인 야소다라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야소다라의 아버지는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싯다르타태자 사위를 테스트를 해요.
무술, 특히 활을 가지고 시합을 했습니다.
샤카족 장정 500명 장정 남자를 모아 가지고 활 시합을 붙인 겁니다.
싯다르타태자는 할아버지가 쓰던 활을 사당에서 내어 와서 그걸로 대결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힘이 좋았던지 아버지(정반왕)도 그랬고 그 밑에 다른 사람들은 활이
너무 무거워서 사용을 못하던 활입니다.
그것으로 활 시합에 참여를 했는데 태자가 얼마나 힘이 좋았는지 화살을 한방 날렸는데 과녁,
나무로 된 과녁을 화살이 통과했어요.
그래도 화살이 힘이 떨어지지 않고 땅에 꽂혔는데 물이 펑펑 솟아올랐다
했어요. 우물이 하나 파진 거요.
그 정도로 힘이 좋았어요.
야소다라 공주를 싯다르타 태자에게 줬어요.
요즘말로 하면 시집을 보낸 거지요.
야소다라 아버지도 아주 흡족했다는 겁니다.
야소다라와 싯다르타태자 사이에 애가 하나 낳았는데 그 이름이 뭐지요?
“라훌라”
라훌라를 언제 낳았느냐 하면 29세에 낳았어요.
어떤 책에서는 19세에 결혼을 해서 라훌라를 낳고 19세에 출가를 했다. 는 말도 있는데
그것은 제가 봤을 때 아닌 것 같아요.
19세에 결혼해서 29세까지 그 동안이 길잖아요.
거의 모든 경전에서는 야소다라만 부인으로 둔 것이 아니다 이랬어요.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싯다르타태자도 여자가 많았네 하고 신심이 떨어질 수가 있어요.
지금 생각으로 하면 안 돼요.
옛날에 태자는 부인이 열도 되고 스물이 돼도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거의 모든 증설은 싯다르타태자는 야소다라 이외에 비 가 둘이 더 있다고
보면 돼요. 무슨 일인지 다른 비 에게도 애를 안 낳았어요.
야소다라가 드디어 라훌라를 낳았습니다.
라훌라를 낳기 전까지 태자는 늘 출가를 동경했어요.
그렇지만 아버지하고 약속이 있어요.
왕손을 얻기 전에는 출가를 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
출가는 못했지만 늘 사색하기를 좋아했어요.
숫도다나 왕이 밤중에 나가서 돌아보면 나무 밑에 앉아서 명상을 즐기고 사색에 빠져있거든요.
왕의 입장에서는 늘 고민이 되는 거지요.
안되겠다. 애를 환락의 생활로 밀어 넣어야겠다.
야소다라 이외에 마누라를 두 명이나 더 붙였는데도 마음을 못 잡고 사색이나 하고 있으니까
밤마다 연회를 베풀었다는 그런 기록들이 있어요.
그런데도 태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드디어 29세에 라훌라가 태어나니까...
“아, 이제는 내가 출가해도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해요.
성질도 무척 급했던 것 같아요. 라훌라 낳고 7일 만에 출가를 해요.
출가의 목적이 있어요.
한 번 따라해 보세요.
내가 출가하는 것은
병듦이 없고
늙음이 없고
죽음이 없고
근심, 걱정, 번뇌가 없고
지저분함이 없는
가장 안온한 행복의 삶
즉 열반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출가를 하게 되는데 출가하는 날 전날 저녁에도 파티가 있었어요.
궁녀의 아름다운 미녀들이 술을 따르고 놀았던 거지요.
태자가 출가를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보니 새벽이라.
여자들이 여기저기 엉켜있고 옷은 반쯤 입고 침도 흘리고 머리카락도 엉켜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니 여자들에게 질려버렸어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시종 찬타카를 깨웠습니다.
시종이름이 ‘찬타카‘라.
시종이름은 찬타카인데 말 이름은 ‘칸타카’라.
말을 빨리 몰아오라고 했어요.
“태자시여! 왜 이러시오.”
“바람 쐬러 가련다. 바람”
새벽에 바람 쐬러 간다 이거지요.
드디어 성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것을 극적으로 표현해서 성을 넘었다. 유성출가라 했는데 말을 타고 성을 넘을 정도면 성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정문으로 나가겠지요.
태자가 바람 쐬러 나간다는데 문지기가 문을 안 열어주면 어떻게 돼요.
내 생각에는 유유히 정문을 통해서 나갔다고 생각이 돼요.
그 문을 나가면서 태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한 번 따라해 보십시오.
생노병사의
근심걱정을
해결하지 않으면
다시
고향에 돌아오지 않겠다.
이런 결심을 했어요.
이것은 현재 스님들의 출가 결심하고 비슷해요.
저도 처음에 출가를 했어요.
버스를 타고 우리 집을 나오는데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면서 내가 목적했던 그런 부분을
달성하지 않으면 다시는 이 길을 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에 소매가 흠뻑 젖도록 울었지요.
그렇게 울어 본적도 없고 그 뒤로도 울어 본적이 없어요.
아마 부처님도 그런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통도사를 갔더니..
통도사 스님들이...
“집이 어디고“
경주라고 했더니 불국사가 가까이 있는데 뭐 하러 왔냐고 그래.^^
인연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요.
여기 거사님은 합천에서 오셨다고 했지요.
낮에는 보니까 전주에서 오시는 분도 있어요.
아침 7시에 출발해서 공부를 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공부를 안하느냐는 거지요.
아무튼 우리 부처님 싯다르타태자는 그렇게 해서 찬타카를 데리고 출가를 하게 되었는데 3
50킬로미터를 갔어요.
‘아노마‘ 또는 ’아누마‘ 라는 강이 있는데 그 강까지 갔어요.
이 강이 아주 유명한 강입니다.
저는 인도를 많아 다녔지만 작년에 이 강을 봤어요.
아노마 강이 어떻게 생겼는지 11번을 봐요.
제가 사진 찍어 놓은 것을 보니 정말 자상한 남자 같아.^^
지금 이것은 건기라. 우기 때는 물이 가득 차겠지요.
근기라서 물이 조금 말라서 그렇지 우기 때는 강이 가득 차겠지요.
아노마, 이 아노마 강까지 이르렀어요.
350키로면 여기서 서울까지 안되겠습니까?
카필라왕궁에서 350키로의 거리입니다.
작은 부족국가를 하나 지나고 두 번째 부족국가 말리족이라고 하는 부족국가까지 온겁니다.
그리고는 시종 찬타카에게 말했어요.
시종 찬타카가 그냥 가려고 하겠습니까?
“저는 못갑니다. 이대로 가면 저는 죽습니다.”
“내가 출가했다는 증표다.” 면서 머리카락을 잘라서 찬타카에게 줘요.
부왕에게 전해라.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끊고 나서 일체중생들의 반려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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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꼭 전해라.
머리카락은 각오이거든요.
마부 찬타카가 그 머리카락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돼요.
부처님은 강을 건너서 어디까지 가시느냐?
바로 강을 건너면 7번 나옵니다.
그 곳을 현재 ‘케살리아’라고 말합니다.
7번, 8번, 9번까지 같은 곳입니다.
방향에 따라서 찍은 것이고 9번은 더 접근해서 찍은 겁니다.
케살리아라고 하는 이곳이 부처님의 출가 장소입니다. 출가지라...
여기서 스스로 머리를 깎고 출가, 수행의 길에 들어서게 된 처음입니다.
(부처님께서 머리를 깎고 수행의 길로 들어선 출가장소 케살리아)
언제 이 유적지가 발견되었느냐?
이 케살리아도 제가 작년에 만났는데 그 동안은 묻혀 있었던 겁니다.
7번 그림을 보면 나무가 많이 서있지요.
이쪽도 나무로 다 덮어져 있었는데 흙을 파고 나니까 지금 8번 그림처럼 적벽돌이 다 드러납니다.
탑처럼 되어 있는 거지요.
불심이 있었던 우리 불자들이 이곳 케살리아는 부처님의 출가지니까 성지로 하자 해서 탑을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탑을 만들면서 곳곳에 돌아가면서 부처님 상을 새겼는데 이 상을 이슬람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다 파괴를 했어요.
이슬람 군이 물러나고 난 뒤에 좀 파괴되었지만 성지는 그대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모든
불교도들이 이 동산을 모두 흙으로 덮어 놓았어요.
흙으로 덮어 놓은 것이 7, 8년 전에 발견이 되어서 반 정도 모습을 드러낸겁니다.
7번 그림 봐요.
반은 아직 덮어져 있고 반 정도는 아직 그대로 있잖아요.
이 땅 지명 이름이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출가지, 아노마강을 건너서 케살리아 동산, 케살리아 숲에서 출가를 했다는 겁니다.
처음에 출가를 맡긴 찬타카는 돌아가고 거기서 최초로 만난 사람이 사냥꾼이었어요.
숲속에 사냥하러 온 사냥꾼이었는데 사냥꾼에게 얘기했습니다.
“당신은 뭐하려고 그렇게 살며시 돌아다니느냐?
“나는 사냥하는 사람이오”
“왜 남의 생명을 빼앗아 가면서 그렇게 삽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사냥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가족들이 다 있다. 이래요.
내가 당신에게 굶어죽지 않을 만큼 재산을 준다면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입고 있었던 태자의 옷을 사냥꾼에게 주면서 살생하지 말고 이것을 팔면 몇 평생 살것이다.
하고 옷을 벗어 줘요. 옷이 엄청 비쌌던 모양입니다.
“내가 발가벗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입고 있는 옷을 주시오.“ 했습니다.
사냥꾼이 그때 노란 옷을 입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노란 옷이 최초로 출가해서 바꿔 입은 옷이 노란 옷입니다.
이것이 노란 가사가 되었다 이래요.
자기가 입었던 아주 고급스러운 옷을 사냥꾼에게 주고 사냥꾼이 입었던 노란 옷을
(노란 옷은 평화를 상징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본인이 입고 드디어 스스로 삭발을 하고
망고의 숲에서 출가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왕궁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힘들겠습니까?
감시하는 사람도 많을 곳이고 이제는 찬타카도 가고 혼자잖아요.
7일 동안에 망고 숲에서 출가의 기쁨을 누렸더라 그랬습니다.
그 뒤로 어디를 가느냐?
아까 이 앞쪽에서 말씀드렸던 마가다국으로 가게 돼요.
빔비사라왕이 통치하고 있었던 마가다국으로 가요.
마가다국(마갈타)은 옛날에는 모든 수행자들이 집결해는 그런 나라였다 했어요.
그 나라의 수도가 왕사성이지요.
왕사성에서 드디어 이제 많은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 얘기는 다음 초하루 날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에는 29세에 출가한 이후 케살리아에서 부터 나중에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이루시던
기간까지 29세에서 35세까지 말씀을 드릴테니까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초하루에 오신 공덕으로 가정이 편안하시고 하시는 일들이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초하루 법문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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