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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9 (2025년 07월 06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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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11월 초하루 [부처님 일대기] 우학큰스님 법문(1)

2013.01.07 | 진공심



11월초하루 법문

약불전법도중생(若不傳法度衆生)하면

필경무능보은자(畢竟無能報恩者)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약에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면

결국은 부처님 은혜를 갚는 사람이라고할 수가 없다.

대지도론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벌써 양력 2012년 12월 마지막 달력을 보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면 곧 동지기도 입재일이기도 합니다.

벌써 한해가 다가고 하는 일 없이 또 나이만 한 살 먹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들은 부처님 법을 배우고 수행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포교 공덕도 많이 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해 동지기도에 동참하시는 분들께는 영어와 중국어로같이 번

역되어 있는 저의 한시 60편을 실은 한시 집 한권씩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모두다 내년 한해를 생각하시면서 동지기도에 꼭 동참하시기를 바라며

금일 초하루 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뉴욕도량에 선방에 앉아 있습니다.

뉴욕도량 적지만 선방도 있고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지난달에 이어서 흥미진진한 부처님 일대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의 성도와 부처님의 성도이후 49일 동안의 부처님의

행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인물 2번 그림을 보시면 저 멀리 방추형의 탑 하나가 있는데

그 탑이 마하보디대탑입니다.

마하보디 대탑은 몇미터라고 했지요?

52미터의 마하보디 대탑. 바로 이곳이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자리입니다.

여기서 대도를 깨치셨다 그랬지요.

대도를 깨치실 때 그 앉은 자리를 금광보좌라 말하는데

금광보좌의 장소는 유인물 4번입니다.

 

 

그 아래 꽃 같은 놓아두었지요?

바로 이 자리에서 부처님께서는 길상초를 깔고

크게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겁니다.

오른쪽 벽처럼 보이는데 바로 그 벽이 탑의 맨 밑단입니다.

그래서 바로 탑에 붙여져서 금광보좌가 자리를 하고 있지요.

금광보좌 바로 위쪽에는 큰 보리수나무가 서 있습니다. 그

래서 금광보좌에서 깨달음을이루셨는데 깨달음을 이룬 것을

기념해서 마하보디 대탑이 우뚝 서있고 마하보디 대탑 1층안에

유인물 1번 사진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부처님 상호가 아주 원만하시고 세계의 모든 불교도들이

한번 친견해 보고 싶은 그런 부처님이지요.

완전히 깨달으신 상호 원만한 그때의 부처님이시라고 보면 되고

황금가사 바로 앞에 놓여져 있는 그것은 바루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황금가사는 매일 새벽에 바꾼답니다.

 

 

누군가가 황금가사를 공양 올리면 매일 새벽에 스님들이

가사(옷)를 바꾸어서 입히신다.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본론 적으로 말씀드릴 것은 부처님께서는 대도를 깨치셨다

그랬는데 대도. 또 어떤 사람은 우주 진리를 깨치셨다 그래요.

우주 진리를 깨치시고 대도를 깨치셨다 했는데 또 어떤이는

참 나를 개달았다 그래요.

이 전체가 어떻게 보면 혼돈이 올수도 있는데

제가 분명히 정리를 해드리면 참 나를 깨달았다는 것과 즉

자기 자신을 깨달았다는 것과 대도를 깨달았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멸진정에 들었다 했어요.

멸진정 시각과 감각이 완전히 정지된 완전히 초월된 그런 정에 들었습니다.

이 멸진정은 특별한 삼매입니다.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다가 정에 들었던 무소유처정이나

또는 비상비비상처정하고는 차원이 달라요.

99도하고 100도는 다르다 이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99%까지 따른 곳에서 공부를 하셨던가 봅니다.

그런데 99%에서 100% 비등점 되는데 그렇게 힘들었던것 같습니다.

바로 비등점에 드신 삼매가 바로 멸진정이라 그랬어요.

멸진정에 드실 때 수행하신 방법이 뭐였겠는가?

그건 제가 지난번 초하루 때도 말씀드렸듯이 나 자신이

무엇인가 이놈이 도대체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도대체 나라고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때 당시에 많은 수행 방법이 총동원 되었지만 깨달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 라는 수식관, 부정관, 많은 관법이 있었지마는 그것으로는

해결이 안 되었기 때문에 분명히 특별한 그런 수행 방법을 택하셨을 텐데

그것이 바로 참 나를 되돌아보는 수행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나를 무엇일까? 하는 그런 화두를 가지고 드디어 멸진정에 드셨는데

그때 새벽 별을 보고 깨치셨다 그랬잖아요.

결국에는 참 나를 깨달았다 그 말이지요.

자기 자신을 확실히 알았다.

 

 

이것이 도대체 대도를 깨친 것과 어떤 관계가 있겠는가?

감포도량 요사채 이름이 [나를 찾는 도량]이라 그랬습니다.

나를 찾는 일 만큼. 자기 자신을 아는 만큼 더 중요한 일은 없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왜 그러면 참 나를 깨닫는 것이 대도를 깨치고 우주

진리를 깨치는 일이 똑 같은 일인지 또 말씀드리기로 하고 그렇다면

부처님만 그렇게 깨달았겠는가?

부처님만. 여기서 전제 되는 것은 부처님이야 말로 대도를 깨치셨다는 겁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상정등정각을 깨쳤다는 거지 그 점이 특별 하다는 거지.

모든 존재들도 다 깨달을 수 있고 깨달아 있고 현재 깨달아 있고 현재 깨어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다 지각하고 다 느끼고 있지 않나 이 말입니다.

부처님만 깨달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자기 그릇만큼 다 깨어있고 깨달았다는 거지요.

세계가 눈에 보이는 것은 자기 안목 만큼 보이는 거고 자기 안목만큼

활동을 하는 겁니다. 그 사람의 깨달음의 크기는 그 사람의 활동 방면과

맞먹는다. 그렇게 보면 됩니다. 굳이 예를 들면 부처님 같은 분은

큰 깨달음을 이루셨고 크게 깨어있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시간도 초월해있고

공간도 초월해계신 깨달음이라이거지요.

열반하신지 2500년 수천년 되는 세월에도 온우주를 상대로 법문하고 계시고

온 인류를 위해서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는 거 잖아요.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 이라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다 깨달음은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 깨어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깨어있음과 깨달음이 부처님의 그것하고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부처님을 선망하고 있는거지요.

그러니까 깨어있긴 하되 부처님 만큼 크고 넓게 깨어있지는 못할 뿐이지요.

예를 들면 불이라면 반딧불도 있지만 5촉짜리불 형광등처럼 30촉짜리불

또 태양빛 같은불 등 전혀 차원이 다르잖아요.

공통적인것은 빛이 있다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다 깨어있다는 것입니다.

불도라는 것은 바로 그런점이지요.

 

 

공통적인점이 다 빛이 있다는 것인데 특별한 점이라는 것은 각각의 분수와

깜량에 따라서 빛의 빛깔이 빛의 밝기가 다르다. 그것이지요.

그래서 빛의 성질 깨달음의 성질을 우리는 불성이라 생각해요.

부처님 불佛자 성품성性자 불성이라 그런데 이 불성이라하는

이 불성은 누구에게나 다 갖춰져 있다는 겁니다.

빛이 작지만 누구에게나 다 빛은 있다는 겁니다.

그 빛을 점점 더 확대시켜가고 키워가는 것이 진정 수행하는 사람들의

몫이지요. 우리가 보면 빛도 돌리면 확 밝아지는 그런것도 있잖아요.

내안에 불의 씨앗은 다 있다는겁니다.

불의 씨앗자체도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그 빛을 극대화한 그 자리에

부처님이 계시고 우리들은 나름대로의 작은 부처님을 가지고 있는거지요.

그래서 자각의 성질 깨달음의 성질 그것을 불성이라 말해요.

누구에게나 다 불성은 있는겁니다.

 

 

불성이 적은가 큰가 그것의 차이점이 있는거지요.

사실 깨달음을 말할때면 자기보다 더 크게 깨달은 사람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을 할수 없어요.

그 수준이 못됐기 때문에 알수는 없는 거지요.

밑에 수준에서는 위의 수준을 알길이 없는 것이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제 자신이 이뭣고 나는 도대체 누구이고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분명히 거기에 대해서 탐구를 하셨고 그것을 깨달으셨을것이다.

제가 이렇게 추측을 하는겁니다.

이건 저의 추측인데 부처님께서는 요즘 간화선의 가장 표본이라고 볼수있는

시심마 시삼마 이 무엇인가?

이것을 깨달으셨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본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분명히 말씀들 드리면

부처님께서 수식관을 가지고 깨달았다 그건 수준이 좀 낮은 얘기가 아닌가?

수식관이나 호흡관으로는 깨닫지 못하셨다.

그리고 또 책들을 보면 12연기법을 가지고 깨달았다 하는데

그것도 저는 공부가 덜 된 사람들의 얘기가 아닌가 생각이 돼요.

간혹 책에 보면 12연기법으로 깨달았다 하는데 그것 또한 제가 봤을 때는

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얘기다 이렇게 보는 거지요.

 

 

제가 분명히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수식관이나 12연기나 이런 것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6년을 고행을 해오시면서 부처님께서는 이걸로는 도저히 공부가 드러날 수 없다. 공부가 더 이상 향상될 수 없다 라는 판단 하에 수자타소녀로부터 유미죽 공양을 받으시고

원기를 회복하시고 보리수나무 아래 가셔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마지막 7일을 정진하실

때는 분명히 전혀 다른 새로운 방법의 수행법을 도입하셨을 것이다 라는 겁니다.

그 때 도입하신 수행방법이 지금까지는 관법에 의존했지만 그 다음 지금

앞으로 하게 되는 수행은 분명히 ‘나는 무엇인가? 도대체 지금까지 해매고

돌아다녔던 자기 자신은 도대체 무엇인가? 라고 하는 것을 궁구하셨을 것이다 그 말입니다.

아무튼 제가 확신하건데 부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자기 존재를 분명히 아셨다는 거지요.

 

 

나를 분명히 안 것과 아까 처음에 제가 말씀드렸던 우주를 아는 것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거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인데 자기 자신을 확실히 깨달아 버리면

참 자아를 완전히 깨달아 버리면 온 우주를 다 아는 일이 됩니다.

온 우주의 성품을 우리는 법성이라 그래요. 법성이라...

칠판에도 法性이라 써놓았지요.

우리가 법성게라는 말도 있잖아요.

온 우주 법계의 성품을 법성이라 하지만 낱낱의 성품, 모든 존재만의 성품을

자성이라 이렇게 말해요. 자성...

자성불 이런 말도 하지요

우리가 자성불을 찾아야 된다. 그러지요.

이 法性과 自性은 한바탕입니다. 하나의 바탕입니다.

즉 나의 참 성품인 자성을 깨달아버리면 만유제법의 본성인 법성을 깨칠

수가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성을 깨달으면 법성를 깨칠 수 있다.

법성을 깨닫는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부처님 자신을 포함해서 온 우주 진리를 통째로

깨달으신 분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래서 깨닫고 보니...

깨달을 때 당신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멸진정으로 들어가셨지만 완전히

확 깨달음의 세계가 열린 뒤에 부처님께서 이 세상 전체를 둘러보시니까

그때 이 세계는 연기법으로 연기로 되어 있더라 이 말입니다.

이 연기라는 말이 칠판에 있지요. 緣起연기...

이 세계가 연기의 세계로 되어 있었다. 라고 하는 것은

깨친 이후에 부처님께서 이 세상을 관망하신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 연기의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되어 있다는 거지요.

다 인연법이다.

그래서 이 연기법에는 기본연기가 있고 12연기법이 있고 법계연기가 있다했어요.

기본연기는 뭡니까?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 이것이 멸함으로서 저것이 멸한다.

차기고피기此起故彼起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나고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 이것이 없어짐으로서 저것이 없어진다.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 이렇게 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있음으로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음으로서 저것이 없다.

이것이 일어남으로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없어짐으로서 저것이 없어진다.

이것이 기본연기입니다.

그 다음 12연기라 하면...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

부처님께서는 이 12연기를 가지고 순간역관이다

 

 

그 다음에 부처님께서는 법계를 다시 관찰하셨는데 그 때문에 법계연기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법계연기...

이 법계연기는 중중무진연기라 그래요

거듭거듭 중첩된 연기다 이거지요.

예를 들면...

내가 이 자리에 놓여진 것은 어느 단순한 하나의 이유 때문에 놓여진 것이

아니라 많은 세월 수억 겁의 세월을 그리고 무한대의 공간이 현재의 나를

이렇게 잡아두고 있는 거지 어느 한 이유 때문에 놓여져 있는 것이

않다는겁니다. 그러니까 중중무진연기라 그래요.

그것을 우리는 인드라망연기라 이렇게 말해요.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의 다음카페 공식 이름이 ‘불교인드라망’ 아닙

니까?

아무튼 이 연기적 세계에 놓여져 있다는 겁니다.

 

 

법성게에도 보면 ‘무량원겁즉일념’

무량겁이 한 찰라에 들어있고 이 한 찰라가 무량겁에 본다는 거지요.

그리고 시방세계가 한 티끌에 다 들어가 있어요.한티끌

이 한존재속에 온 우주와 온 공간이 다 들어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한티끌이 또 시방세계에 다 포함된다 이 말입니다.

내가 숨쉬고 말하는 것이 시방세계에 다 관계하고 있다 이말입니다.

법계연기가 법계연기의 어떤 위대성입니다.

 

 

그런데 이 법계연기를 아주 장엄하게 나타내고 있는 경이

화엄경이라하는 경입니다. 그래서 이세상은 이렇게 중중무진의 연기로

되어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참으로 조화된 세계가 바로 이세상이다.

그렇지만 깨달음의 안목으로 보았을 때는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진정한 대도 완전한 깨달음의 안목으로 보았을때 나타나는 경지가

화엄경의 경지입니다. 화엄의 경지라 이말이지요.

그래서 화엄이라 하면 화려하게 장엄돼있다 이말이 거든요.

그래서 화려하게 장엄된세계. 화엄세계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이세상을 이렇게 둘러 보셨어요.

모든걸 그대로 관해 보셨어요.

 

 

그런데 깨달음의 안목에서 보시니까 이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조화롭드라 이거지요. 그게 자내정이라고 해서 부처님 내면에서 일어나는 한량없는 그런 적멸의 세계입니다.그게 바로 그대로 법문이 되어 버렸어요.

그것이 삼칠일동안 아름다운 세상 그리고 조화된 이세상이 그대로 부처님 마음 가운데서 부처님의 자내정으로서 그런 법열이 일어나게 된거지요.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것이 아니라 그런 부처님의 아름다운

세계를 가르치고있는 그마음 그마음 세계를 많은 보살들이 보고 증명해서

말씀하신 것인데 그것이 삼칠일동안 이뤄졌다 그랬어요.

삼칠일 이십일일 동안 부처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화엄의 세계를

자내정으로 관찰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화엄경이라 그래요.

여기서 다시 경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부처님께서는 첫주

둘째주 셋째주 삼주까지는 연기의 도리를 관하셨고

연기의 도리 가운데서도 중중무진연기를 나타내는 법계연기 즉 화엄경,

화엄의 도리를 설파하셨다는 겁니다.

 

래서 1주 2주 3주동안에 화엄경이 설해졌다 그렇게 보는것이고

거기서 또하나 더 말씀드리면 부처님이 나무랑 관계되는 부분이 많은데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시고 1주 2주 3주 4주까지는 보리수나무와 보리수나무

근처를 배회하셨습니다.

그다음 5주는 단향나무라해서 단향나무 아래서 선정에 드셨고

6주는 무차린다나무라해서 무차린다란왕이 유명하지요.

7주는 라자라따나무라는 나무 아래서 선정에 드셨다 그랬습니다.

법열을 느끼신 거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볼것이 부처님께서

깨닫고 난 이후 깨닫고 난 이후에 마음의 심정, 깨달았다 라고하는

것은 대도를 성취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교학적으로 보드라도 마음 가운데 있는

탐심과 진심과 치심 탐진치 이것을 다 떨쳐버렸다는 의미가 있어요.

탐진치라고하는 이런 지저분한 것들이 다 없어졌다 이말입니다.

우리가 정진을 하면 마음이 깨끗해진다 그랬거든요.

왜 마음이 깨끗해진다라고 말할까?

탐진치 라는 지저분한 것들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런 말은 한거지요.

그래서 탐진치 라고하는 지저분한 것이 없어짐으로서

즉 마음이 깨끗해 짐으로서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마음이 아름다워진다 이 말이요.

우리가 지저분한것이 없어지면 그 자리는 본래 아름다웠던 것인데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거지요.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아름다움을 통해서 마음이 지극히 행복해진다 이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선하거나 기도하거나 절에 와서 절을 하거나 이 수행을 하게되면

마음이 지극히 깨끗해지고 두 번째는 마음이 지극히 아름다워지고 마음이 지극히

행복해지는 것을 누구나 다 느낄수 있는 거지요.

그 때문에 절에 오는거지요.

부처님께서는 우리 차원은 아니지요.

우리 차원보다 훨씬 더 큰 차원에서 큰 깨달음을 이루신분이니까 이 세계에 대해

말하자면 더 말할것도 없지요.

마음의 깨끗함 마음의 아름다움 마음의 행복 더 이상 말 할것이 없지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아무튼 깨달음을 이루시고

이런 마음의, 심경의 희열을 느끼셨습니다. 그

래서 무려 49일 7주동안 이러한 마음의 법열이 계속 이어져갑니다.

그래서 첫째주는 너무나 기뻐가지고 너무나 기뻤다 그랬어요.

첫째주는 깨달음을 이루시고 너무나 기뻐서 그 자리에서

한량없는 법열을 계속 느끼셨다 그랬습니다.

깨달았다는 것은 모르던 것을 아는거 잖아요?

거 얼마나 기쁜 일이요?

 

 

우리가 절에 와서 하나라고 알고 집에 가면 그만큼 마음이 기쁜 일이 없지요.

얼마나 기뻐요. 또 절에 와서 우리가 참선이나 기도나 부처님 근처에만 왔다가도

마음이 기뻐 잖아요.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이미 깨달음을 이루셨고

우리는 그 깨달음의 근처에서 얼씬거리는 것만 해도 기쁜 일이요.

그래 부처님께서는 기쁘셨어요.

그리고 두번째주에는 감사의 마음이 일어났다 했어요.

감사의 마음이 일어났다. 둘째주에는,

세째주에는 발걸음마다 하는 일마다 다 경사가 있었다.

이 무슨 얘긴고하면 부처님께서 세번째주에 이렇게 걸음을 걸으시는데

걸음을 놓으실 때마다 발바닥에서 연꽃이 피었다 했어요.

이거 대단한 일이지요.

 

 

그리고 네번째주에는 몸에서 오색광명이 나왔다 했거든요.

오색광명이 나왔다 이거는 몸이 좋아졌다.

우리가 수행을 통해서 마음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마음이 행복해지면

이런일이 누구에게나 다 일어난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오색광명이 나왔다는 것은 몸이 좋아졌다 이말 이거든요.

건강이 좋아졌다.

그리고 다섯 번째주 5주째는 마구니가 다 없어졌다 했어요.

마구니 이따 얘기로 또 말씀드릴겁니다만 시기 질투하는 사람은 언제나 따라다녀요.

일이 잘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처럼 대도를 성취해버리면 마구니가 없어집니다.

 

 

그다음에 여섯번째주는 어떤일이 벌어지느냐?

무차린다라는왕이 또는 뱀왕이 부처님을 에워싸서 갑자기 불어닥친 태풍 또는 자연의

어떤 불순한 일기를 동식물이 도와주는 그런일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여섯째주는 자연이나 동식물이 도와준다는 겁니다.

자기 마음이 지극히 깨끗해지고 자기마음이 지극히 아름다워지고 자기마음이

지극히 행복해지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다음 일곱째주는 마지막 일곱째주는 어떤일이 일어나는가?

드디어 이웃들이 공양을 바치고 공양을 하고 먹을게 생기고

그다음에 법을 설하게 되어 진리를 설하게 되는 그런 인연이 닥치는 거지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7선정차에서 일곱곳을 다니시면서

그러니까 대부분 보리수나무 마하보리대탑의 근처입니다.

마하보리대탑의 근처를 걸어 다니시면서 일어나고 있는 법열을

본인 당신이 다 보시게 되는 거지요.

아무튼 다시 말씀드리면 1주 2주 3주 동안에 뭐가 설해졌다 했지요?

화엄경이 설해졌다 했어, 화엄경이,

 

 

부처님께서는 말없음으로서 말씀을 하시게 된 겁니다.

우리가 꼭 말을 해야 법문이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말 없음으로서 말씀이 되셨는데 그것이 화엄경이었어요.

첫재주에는 보리도량 바로 깨달음을 이루신 바로 그 자리

금강보좌 보리도량 그 자리에서 뭐가 일어났다 했지요?

기쁨이 일어났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대도를 이루신분인데

우리도 부처님 근처에 왔다 갔다하면 기쁨이 일어난다. 이렇게 봐도 돼요.

오늘처럼 초하루다 해서 겨울에 다 모이셨잖아요.

다 기쁜일이 생긴다이거지요.

아까 봤던 첫 번째 1번 그림이 부처님께서 대도를 이루신 신수가 훤한 상호가


기획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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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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