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상(無我相) 그리고 무아견(無我見) 살아 숨 쉬는 지금 이 순간을 챙겨야 합니다.
이번 일생을 그르치면 다시 다음 일생을 기다려야 합니다. 다음 어느 일생에서 어느 겁 동안이나 시간을 지체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이 신체를 위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신체에 집착하게 되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 게으름, 의심이 모두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번뇌를 어떻게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몸을 잊고 항상 금강경의 “무아상(無我相), 무인상(無人相), 무중생상(無眾生相), 무수자상(無壽者相)”을 독송하는 것입니다. 단지 상(相)만 거짓이 아니라, 생각 역시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금강경 후반부에서는 “무아견(無我見), 무인견(無人見), 무중생견(無眾生見), 무수자견(無壽者見)”이란 법문으로 투철하게 강설하고 계십니다. 정토법문을 닦아서 극락왕생하려면,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그만이지만, 생각이 일어나면 곧 아미타불이어야 합니다. 입속에서 염하는 것이 아미타불이어야 합니다. 출처 : 정공법사 법문 중에서 |
<ⓒ참좋은인연신문사 & 한국불교대학大관음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